조선의 궁궐은 단지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수백 명에 달하는 궁녀들이 오직 ‘질서’와 ‘의례’를 위해 살아가는 체계적이고도 폐쇄적인 작은 사회였다. 그 안에서 입는 모든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신분, 역할, 계절, 행사의 성격까지 담아내는 상징이자 규율의 일부였다. 왕비가 입는 화려한 당의에서부터 하급 궁녀의 단정한 저고리까지, 그 모든 옷은 정해진 규칙과 손끝의 기술로 완성되었으며, 이 제작의 중심에는 바로 궁녀들이 있었다.우리는 궁녀를 ‘복종하는 자’로만 기억하기 쉽지만, 실상 이들은 조선 궁중 복식 시스템의 디자이너이자 장인이었다. 특히 궁녀들의 의복은 외부 장인이나 관청이 아닌 궁중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기획되고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상의원(尙衣院)과 별도로..